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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대한민국 임시정부 99돌]대장정의 끝, 기억을 지키면 힘이 된다-경향신문
글쓴이 관리자
날 짜
18-09-06 10:19
조회(3124)
#1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906060000… (838)


ㆍ③충칭, 대장정의 끝
ㆍ임정의 여정, 대가족에겐 독립 투쟁이자 생활의 역사
ㆍ현재로 잇는 '기억의 힘'





중국 류저우 낙군사의 임시정부 활동 진열관에 전시된 사진. 1919년 6월 17일 설립된 임시사료편찬위원회 위원들로, 뒷줄 왼쪽부터 3번째 인물의 이름은 ‘○’로 비어있다. 유정인 기자

중국 류저우 낙군사의 임시정부 활동 진열관에 전시된 사진. 1919년 6월 17일 설립된 임시사료편찬위원회 위원들로, 뒷줄 왼쪽부터 3번째 인물의 이름은 ‘○’로 비어있다. 유정인 기자






대한민국 임시정부(임정)로 일제강점기 항일운동을 절반도 설명할 수 없다. 다시, 임정의 27년은 백범 김구 선생 등 몇몇 요인들의 삶으로도 요약할 수 없다. 이름이 전해지는 수십명으로 넓혀도 임정 대가족 100여명의 투쟁과 생활은 다 기록되지 않는다. 


상하이(上海)에서 시작해 충칭(重慶)에 이르는 여정에는 임정의 흑백사진 속 ‘○’으로 이름이 비어 있는 청년의 이야기가 녹아 있다. 이는 ‘이씨(李氏)’로만 기록된 스물여섯살 여성의 이야기, 임정이 중국을 떠돌던 시기 중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이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광복’...축포 속에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런 모든 개개인의 대장정은 1945년 충칭에서 종착점에 닿는다. 임정이 충칭으로 청사를 옮긴 지 5년째 되던 해의 8월15일. 일본은 2차 세계대전 패배를 인정하고 항복을 선언한다. 그렇게 오래 기다린 광복은 갑작스럽게 왔다. 임정이 한국광복군 국내진공작전의 투입 시기를 재던 중이었다.


“일본이 항복했다!” 소식이 전해지고 충칭 시내에는 중국인들이 축하하며 터뜨리는 딱총 소리로 가득했다. 임정 청사 근처의 집에서 소식을 들은 17세 소년 김자동(현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장)과 몇몇은 모두 방에서 벌떡 일어섰다. 다음날 새벽 1시쯤 집에 들어가니 원래 잠자리에 일찍 들던 어머니 정정화 선생이 그날은 늦게까지 아버지 김의한 선생과 이야기 중이었다고 한다.


정정화 선생은 “갖가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머릿속에서 뱅뱅 돌기는 했지만, 어쨌든 우리나라가 독립되었다는 설레고 기쁘고 벅차오르는 감정만은 속일 도리가 없었다”고 후일 적었다. 독립운동가 양우조, 최선화 선생도 “세상은 밤을 새워가며 미칠 듯이 좋아라고 야단을 한다. 그러나 웬셈인지 우리나라 사람들은 나와 같은 맘인지 다들 멍하여 가지고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것이다”(<제시의 일기>)라고 이날의 기억을 담담히 남겼다. 




대한민국 광복 후 4개월여가 지난 1946년 1월10일 한국광복군 제3지대 제2구대원들은 그들이 바라는 나라의 염원을 담아 태극기(왼쪽)에 서명했다. 72년이 흐른 지난 8월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의 독립대장정에 참가한 이형배씨가 이들을 기억하는 여정에 나선 시민들의 모습을 모아 태극기를 만들었다. 국사편찬위 전자사료관·이형배씨 제공

대한민국 광복 후 4개월여가 지난 1946년 1월10일 한국광복군 제3지대 제2구대원들은 그들이 바라는 나라의 염원을 담아 태극기(왼쪽)에 서명했다. 72년이 흐른 지난 8월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의 독립대장정에 참가한 이형배씨가 이들을 기억하는 여정에 나선 시민들의 모습을 모아 태극기를 만들었다. 국사편찬위 전자사료관·이형배씨 제공





■환국부터 진통, 김구·김원봉 비극적 죽음 




[대한민국 임시정부 99돌]대장정의 끝, 기억을 지키면 힘이 된다



꼬리를 물게 한 우려는 현실화했다. 당장 환국 문제부터 진통이 시작됐다. 임정 요인들은 그해 11월과 12월, 1·2진으로 나눠 상하이를 거쳐 환국한다. 미군정은 임정 인사들을 정부 요원이 아닌 ‘개인자격’으로 오도록 했다. 1진에는 10여명의 귀국만 허용했다. 대가족은 다음해인 1946년 수차례에 걸쳐 배편을 통해 고국으로 돌아왔다. 1인당 허용된 짐보따리 50㎏조차 채우지 못한 이들이 많았다. 부산항에 닿아서는 방역과 통관 절차 등을 이유로 배 위에서 사흘을 더 머문 뒤, 수용소로 들어갔다. “난민수용소, 우리는 난민의 자격으로 고국에 돌아온 것이었다”(정정화 선생 <장강일기>)


해방된 고국은 이미 북위 38도선으로 갈려 각각 미국과 소련의 군정 아래 놓였다. 1945년 12월 미국, 영국, 소련의 외무장관들이 모인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신탁통치가 결정됐다. 신탁통치 문제로 좌우익은 극렬한 분열을 겪었다. 미소공동위원회가 1947년 10월 결렬되면서, 남북한이 각각 단독정부를 수립하는 쪽으로 분단이 공고화했다. 김구 선생은 1949년 육군 소위 안두희에게 암살됐다. 해방 후 임정 요인 2진으로 환국한 약산 김원봉의 삶도 비극적으로 끝났다. 그는 1947년 전국노동조합평의회의 총파업 배후로 구속당해 친일경찰 노덕술에게 폭행을 당하고 사흘을 울었다. 1948년 월북했지만 1958년 북에서마저 숙청당하며 남과 북 양쪽에서 모두 잊혀졌다. 


■“고단한 일상과 더 나은 세계로의 희망을 조화” 


임정의 대장정은 고난인 동시에 현행 헌법까지 이어지는 임시헌장을 안은 희망의 여정이었다. 고통스러운 투쟁의 역사인 동시에 임정 대가족 개개인의 생활의 역사이기도 했다.


독립대장정 대원들을 이끈 여행전문가 박찬일 여행이야기 대표는 “임시정부라고 하는, 어떻게 보면 거대한 독립운동, 거대한 독립운동 조직을 우리 일상과 직접 연결하기는 어렵겠지만, 임시정부의 27년 중에 독립투쟁의 기간보다 생활의 기간이 훨씬 더 많았을 것”이라며 “그때그때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했는지 한번 들여다보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정화 선생이나 김구 선생 가족들의 모습은 지금의 어려움을 어떤 방식의 희망으로 이끌어내고 풀어가려고 했는가를 보여주거든요. 일상의 어려움과 내가 향하고 있는 더 나은 세계로의 희망, 이 두 개의 조화를 만들어내려고 했던 것을 볼 수 있어요. 현재 우리가 많은 문제를 안고 살지만 이를 풀어가려고 하는 노력, 그리고 (미래를 위한) 지향점을 가려는 세력들을 결합하려는 방법을 이 삶 속에서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대장정 참가 시민들, 희미해진 이들을 기억에 새기다 

ㆍ학생과 역사교사.직장인 등 5박6일동안 ‘한 길’ 대장정 
ㆍ“미래로 갈 수 있는 힘 받아” “여성운동가도 조명됐으면”
ㆍ저마다의 질문과 기억 남겨 

■독립유공자 후손 찾아 세계일주한 김동우씨 



멕시코에서 활발히 독립운동을 펼쳤던 김익주의 손자 다빗 김(81)./김동우 사진작가

멕시코에서 활발히 독립운동을 펼쳤던 김익주의 손자 다빗 김(81)./김동우 사진작가




 
지난달 19일 중국 충칭(重慶)의 독립유적지로 향하는 버스 안. 사진작가 김동우씨(40)가 내민 사진에는 흐릿한 모습의 남성이 붉은 소파에 앉아 있었다. 멕시코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김익주 선생(1873~1955)의 손자 다비드 김(81). 지난 1월 멕시코시티에 살고 있는 그를 찾아가 찍은 사진이라고 했다. 일제 시절 멕시코 유카탄반도의 ‘애 니깽(선인장)’ 농장으로 간 조선인 노동자들은 ‘노예노동’과 다름없는 환경 속에서 일했다. 그 와중에도 쌈짓돈을 모아 독립운동 자금으로 지원했다. 이들 중 대다수의 이름은 잊혀졌다. 

“일부러 사진을 흐릿하게 했어요. 우리의 기억 속에서도, 역사 속에서도 잊혀져 가는구나 싶어서요. 그러지 말아야겠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멕시코로 첫 배가 1905년에 갔어요. 한국으로 돌아가려던 꿈은 4년의 노동계약이 끝나는 1909년 깨졌고요. 졸지에 나라를 잃어버리고는 십시일반 돈을 모아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임정)와 미국으로 보내신 거예요. 후손을 만나서도 울컥하고 죄송한 마음이 들었죠.” 

김동우씨는 지난해 4월부터 15개월 동안 세계일주를 하고 지난 7월 귀국했다. 봉오동 전투를 이끈 홍범도 장군의 묘가 카자흐스탄에 있다는 얘기를 떠올리고는, 이란으로 가려던 루트를 바꿔 독립군들의 행적을 쫓았다. 인도, 중국, 멕시코, 쿠바, 미국, 네덜란드, 러시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지에서 ‘희미해진 사람들’을 찾아 사진으로 기록했다. 



쿠바 대한인국민회 아바나지방회의 회관으로 사용되던 건물에 살고 있는 한인 후손/ 김동우 사진작가 제공

쿠바 대한인국민회 아바나지방회의 회관으로 사용되던 건물에 살고 있는 한인 후손/ 김동우 사진작가 제공




 
이들의 기억이 김씨를 임정 대이동기를 쫓는 이번 독립대장정으로 이끌었다. 임정의 출발지였던 상하이(上海)뿐 아니라 중간과 끝지점까지 밟고 싶어졌다고 했다.
 
“세계에 흩어진 독립유적지와 후손들을 찾아다니면서 먹먹하고 슬플 때가 많았어요. 감정이 늘 요동치니까 ‘내가 왜 이걸 하나’ 싶을 때도 있었고요. 이번에 임정이 갔던 고난의 길을 걸으면서 앞으로 제가 해야 할 일들을 다시 다짐하게 됐습니다.” 그는 일본과 몽골, 러시아 등을 찾아 희미해지는 기억을 붙잡는 작업을 계속해 나갈 생각이다.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의 독립대장정 2기에 참여한 시민들은 나이도, 삶의 조건도 제각각이다. 김씨처럼 세계를 돌며 기록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역사를 공부하는 대학생과 역사교사도 있다. 휴가를 내고 온 직장인과 해병대 복무 중인 군인, 독립유공자 후손 등 서로 다른 이들이 모여 5박6일 동안 한 길을 걸어갔다. 

■“기억의 힘이 약해지니 한 치 앞만…” 



지난달 19일 중국 충칭시 투차오 한인촌에서 ‘한인거주옛터’ 표지석 앞을 가리는 수풀을 정리한 독립대장정 대원들이 작업을 마친 뒤 웃고 있다.  김동우 사진작가 제공

지난달 19일 중국 충칭시 투차오 한인촌에서 ‘한인거주옛터’ 표지석 앞을 가리는 수풀을 정리한 독립대장정 대원들이 작업을 마친 뒤 웃고 있다. 김동우 사진작가 제공




 
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임정 대가족의 삶과 자신의 삶을 연결해 나갔다. 여름휴가를 내고 온 직장인 김진씨(28)는 휴양 대신 독립대장정에 참여한 이유를 ‘기억의 힘’이라는 말로 정리했다. “직장에 다니면서 과거를 돌아보고 기억하기가 쉽지는 않아요. 수능 공부한 지도 10년이 됐고요. 기억의 힘이 약해지니까 졸리면 자고, 힘들면 쉬고, 배고프면 먹고, 한 치 앞만 보고 살더라고요. 여기 와서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로 갈 수 있는 ‘기억의 힘’을 받아가는 것 같아요. 돌아가서도 배고프면 먹고 힘들면 쉬겠지만, 이런 변곡점들이 제 일상에도 힘을 줄 것 같아요.” 

참가자들은 사건이 아닌 사람, 그중에서도 묻혀진 사람들을 기억하고 싶다고 했다. 대학생 강은혜씨(19)는 “역사를 사건으로만 보는 게 아니라 그 속에 있는 사람들을 만날 때, 우리는 우리의 지난 시간을 치유하고 회복할 수 있는 것 같다”며 “사람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도리에 대해 고민하게 하는 수많은 사람들, 그 사람들이 만든 사건에 대해 내가 느끼는 감정, 이 두 가지를 기억하고 싶다”고 말했다.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해설사로 일하는 이은주씨(53)는 “임정은 가장 오래 존재했던 독립운동 단체인데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온갖 어려움을 딛고 안살림을 도맡은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아닌가 한다”며 “김구 선생 외에 박차정, 오광실, 정정화 선생 등의 이야기가 많이 언급되지 않는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어린이청소년책 작가인 김은하씨(50) 역시 이번 여정을 ‘사람과의 만남’으로 기억했다. “(한국 독립운동사가 결합된) 책을 쓰는 작업 중에 막히는 인물이 세 명이 있었어요. 둘쨋날 한 사람, 셋째날 한 사람, 마지막으로 다섯째날 가장 안 풀리던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여기에서 얻은 것을 어떻게 풀어낼지 멈추지 않고, 망설이지 않고 움직일 생각입니다. 제가 우연히 그 시대에 태어났다면 어떻게 살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돌아봤어요.” 

■‘바닷 속 소금’들을 기억하다 



지난 달 20일 독립대장정을 마친 뒤 귀국한 인청공항에서 메시지를 적고 있는 참가자들 . 김동우 사진작가 제공

지난 달 20일 독립대장정을 마친 뒤 귀국한 인청공항에서 메시지를 적고 있는 참가자들 . 김동우 사진작가 제공




 
창사(長沙)에서 광저우(廣州), 류저우(柳州), 치장을 거쳐 충칭에 닿는 여정은 임정뿐 아니라 1920년대 공산주의, 무정부주의자였던 독립운동가들의 족적을 확인하는 길이었다. 역사교사 임선일씨(41)는 이런 루트를 따라가며 “근심이 더 쌓이게 됐다”고 했다. “열사들의 체취를 느끼고 그분들께 미안한 마음을 덜고 싶었는데 가슴이 더 먹먹해졌습니다. 독립운동이 최우선이었던 이들에게 사회주의와 민족주의가 무슨 차이였을까. 교과서에는 사회주의 독립운동사가 거의 기록돼있지 않으니까요. 이런 역사교육의 현실에서 이번 대장정을 다니면서 많은 고민과 근심이 생긴 것 같습니다.”
 
대학 역사교육과에 재학 중인 이주아씨(19) 역시 “광저우 기의열사능원에서 조선 청년들이 독립을 위해 다른 나라의 무장봉기에 나서 ‘바닷속 소금’처럼 산화했다는 것을 접한 것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며 “고등학교 후배들에게 독립대장정에 대한 특강을 할 기회가 있는데, 제가 배우고 느낀 것을 생생하게 전달해 주고 싶다”고 말했다. 

임정 대가족의 가장 어렵고 급박했던 이동기를 밟은 시민들은 저마다 다른 질문을 품고 와 각자의 질문을 더해 갔다. 80여년 전 임정 대가족의 삶과 기록은 이들의 현재와 만나 새로운 기억이 됐다. 그렇게 저마다가 안고 간 기억들은 힘이 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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