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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대한민국 임시정부 99돌](2)"한 분은 북, 한 분은 남녘 고향...분단된 조국 독립 원했을까"-경향신문
글쓴이 관리자
날 짜
18-09-06 09:28
조회(1465)
#1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904060000… (393)


ㆍ독립운동사서 지워진 청년들





지난달 17일 중국 광저우 동정진망열사묘원의 학생묘원에 묻힌 안태 선생의 묘비(위쪽 사진)에 독립대장정에 참여한 시민이 꽃을 두고 묵념하고 있다. 광저우의 기의열사능원 안에도 1920년대 중국혁명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희생당한 조선인 150명을 기리는 정자(아래)가 세워져 있다.  김동우 사진작가 제공

지난달 17일 중국 광저우 동정진망열사묘원의 학생묘원에 묻힌 안태 선생의 묘비(위쪽 사진)에 독립대장정에 참여한 시민이 꽃을 두고 묵념하고 있다. 광저우의 기의열사능원 안에도 1920년대 중국혁명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희생당한 조선인 150명을 기리는 정자(아래)가 세워져 있다. 김동우 사진작가 제공






“물 속의 소금.” 


미국 기자 님 웨일스가 정리한 평전 <아리랑>의 김산(본명 장지락·1905~1938)은 중국혁명의 물결 속에 산화한 조선 청년들을 이렇게 표현했다. 1920년대 격렬했던 혁명의 파도에 합류해 ‘항일 투쟁’을 한 이들 중 많은 수가 바닷속 소금처럼 사라졌다. 특히 중국 공산당과의 협력으로 고국의 자유를 꾀하려던 이들은 이후 역사에서도 ‘삭제’됐다. 


중국 ‘혁명의 고향’ 광저우에 
독립 꿈꾸던 조선인들 몰려
황푸군관학교 200여명 재학 
김근제·안태 등 조선인 묘비


지난달 17일 찾은 중국 광저우(廣州)는 잊혀진 이들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공간이다. 중국에선 혁명의 고향으로 불리는 곳. 1911년 중국의 국부 쑨원(孫文)이 봉기를 일으킨 신해혁명의 시 발지다. 1920년대 중국의 남쪽 관문인 광저우로 ‘독립’을 꿈꾸던 조선 청년들이 모여들었다. 상하이에 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 활동이 일제의 탄압 등으로 침체에 빠져들던 시기다. 


옛 중산대학 강당은 왜 이곳에 청년들이 모여들었는지 실마리를 주는 장소다. 1924년 1월 중국 국민당과 코뮌테른, 공산당이 이곳에서 전국대표자회의를 열고 1차 국공합작에 합의했다. 국민당과 공산당이 함께 군벌통치를 깨고 중국혁명을 이루는 데 힘을 모으기로 한 것이다. 약산 김원봉과 권준이 강당 2층에서 이날의 합의를 지켜봤다. 여전히 강당에는 당시 쓰던 청천백일기와 청천백일만지홍기가 걸려 있다. 


다섯 달 뒤 광저우에는 국공합작의 결과물인 황푸(黃 )군관학교가 설립된다. 피압박 민족들에게도 문을 열고 후원했다. 3·1운동 이후 일제 탄압이 극심해진 때, ‘항일’의 군사적 기반을 닦으려는 청년들이 황푸군관학교로 모여들었다. 현재까지 황푸군관학교 학생명단에서 확인된 이들만 73명, 여러 분교에 재학한 이들을 합치면 200명이 넘는다. 제4기에는 김원봉을 비롯한 의열단 간부들도 대거 입학했다. 1927년 4월까지 독립운동을 위해 광저우로 모여든 이들이 800명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국공내전 때 150~200명 사망 
이름 안 남은 ‘무명용사’ 다수


많은 이들이 중국혁명의 파고에 휩쓸려 이국 땅에서 눈을 감았다. 광저우 동정진망열사묘원의 가장 안쪽에는 그렇게 숨진 학생들의 묘역이 있다. 1925년 광둥 군벌 천중밍(陳炯明)이 광저우를 공격했을 당시 전투에 나섰던 황푸군관학교 학생들과 예비입학생들이다. 192 8년 언덕 여기저기에 매장돼 방치됐던 무덤의 묘비를 모아 조성했다. 무덤 형체도 없이 모여 있는 묘비들 중 2개에는 ‘한국인’이라는 글씨가 여전히 선명하다. 평안북도 정주군에서 태어난 김근제, 충북 괴산 출신인 안태 선생. 신상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묘비에 적혀 있지 않다. 김근제 선생의 후손 김기용씨가 2013년 이곳을 찾아 묘비에 술을 올렸다. 안태 선생은 후손을 찾지 못한 상태다.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의 ‘독립대장정’에 참여한 시민들은 잊혀진 묘지에 꽃을 내려놓고 잠시 묵념한 뒤 자리를 떴다. 독립운동가 소수 최동희 선생의 손자 최인경씨는 “묘비 뒷면이 시멘트로 발라져 내용을 알 수 없지만 이분들의 죽음은 경중과 고하에 상관없이 소중하다”며 “한 분은 북, 한 분은 남녘 땅을 고향으로 하고 계신데, 얼마나 그리웠을지. 이분들은 분단된 조국의 독립을 원하셨을지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국공합작은 3년 반 뒤인 1927년 깨졌다. 청년들은 다시 중국 공산당과 국민당 간 핏빛 소용돌이에서 이름 없이 죽어갔다. 그해 12월 공산당이 광저우에서 국민당에 대해 봉기를 일으켰을 때, 황푸군관학교에 재학한 이들을 비롯해 조선 청년들이 공산당에 합류해 맞섰다. 광저우기의열사능원 내에는 이런 이들을 기리는 정자와 비석이 있다. ‘중조인민혈의정.’ 중국과 조선 인민의 피로 맺어진 우의를 기리기 위해 세운 정자라는 의미다. 봉기는 장제스(蔣介石)가 이끄는 국민당에 패해 3일 천하로 끝났다. 당시 조선 청년 150~200명이 사망했다. 이 중 이름이 알려진 이들은 30여명에 불과하다. 분명 존재했지만, 한국 독립운동사에선 사라진 것과 다름없는 무명씨들이다. 


광저우 독립운동사를 연구하는 재중 연구가 강정애씨는 “‘조선인민들’이라고 하니 북한 사람들인가 하지만 당시는 남북이 갈라지기 전이므로 시각을 교정할 필요가 있다”며 “광복 이후 한국 현대사에서 이분들이 잊혀져 역사에 묻혔고, 한국에서 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찾기 시작한 게 7~8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무엇 때문에 이들이 이곳에서 죽어갔을지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 “공산주의든 무정부주의든 조국 찾으려 했던 것…남북 공동연구로 잊혀진 독립운동가 발굴해야”


재중 연구가 강정애씨 




[대한민국 임시정부 99돌](2)“한 분은 북, 한 분은 남녘 고향…분단된 조국 독립 원했을까”



“어서 이리 와봐. 여기 한국인 묘비가 있어.” 2009년 11월, 중국 광저우(廣州) 동정진망열사묘원을 찾은 강정애씨(60·사진)는 남편이 부르는 소리에 학생묘원으로 향했다. 역사에 묻혀져 있던 김근제, 안태 선생의 묘비가 발견되는 순간이었다. ‘어떻게 이분들이 여기까지 왔는지, 왜 이곳에 묻혔는지’ 궁금해졌다. 당시 주광저우 총영사관 행정관이던 강씨는 그때부터 시간을 쪼개가며 광저우 내 독립운동가들의 족적을 찾았다. 


“중국 대혁명 시기 광저우는 우리 독립운동의 ‘펌프’ 역할을 했어요. 황푸군관학교가 만들어지고 임시정부뿐 아니라 여러 독립운동가들이 이곳에 왔죠. 한 분 한 분 연구해나가다 보면 마음이 쓰립니다. 중국에서 독립운동한 분들 중 다수, 그리고 북한에 가신 분들은 한국에 알려져 있지도 않고, 역사에서 그야말로 사라져버렸어요.” 


광저우 현지에서 입수하는 자료와 현장 자료를 국사편찬위원회의 한국사데이터베이스나 독립기념관 자료와 맞춰가며 차곡차곡 자료를 모아갔다. “여기저기 흩어진 이삭을 줍는 작업이었는데, 사실 자료가 있음에도 조명되지 못했다고 봐야죠. 저 자신의 ‘독립대장정’이라고 여기고 있어요.”


중국 공산당과 함께 활동했거나 무정부주의자였다는 이유로 묻힌 희생자들을 강씨는 ‘낮 하늘의 별’들이라고 부른다. “현실과 실제 역사에 대해서 한국전쟁 이후에 우리가 추상적으로 접근하는 것 같습니다. 3·1운동 이후에 임정이 수립되고 환국할 때까지는 분단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민족주의든 공산주의든 아나키즘이든 이들이 목적하는 바는 잃어버린 조국을 찾는 것이었어요. 분단 이후 지금까지는 그렇지 못했더라도, 이제는 남북이 공동연구를 해서 후손들에게 안목을 열어주길 바라요.”


강씨는 광저우에서 활동했던 민족주의자와 공산주의자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를 모아 내년 초 책으로 출간할 예정이다. 신해혁명 직전인 1908년 광저우에서 활동한 범재 김규흥 선생을 비롯, 이름조차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잊혀진 독립운동가 28명의 이야기가 담긴다.


강씨는 지난 6월 영사관을 퇴직했다. 퇴직을 앞둔 지난해에는 임정이 1938년 두 달간 사용한 광저우 청사 동산백원이 실존한다는 것을 공식 확인하는 데 실질적 역할을 했다. “현장에 와서 실존을 확인했는데 숨이 딱 막혔어요. 당시 얼마나 고생했을까 싶어서 ‘여기까지 오시느라 수고하셨다’고 혼잣말을 했죠. 공백기였던 광저우 청사가 확인돼 누락된 역사가 메꿔지는 데 역할을 했다는 데 보람을 느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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