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100년
HOME > 열린마당 > 보도자료

제 목 [독립견문록 ⑧치장 쭌이] 한국인 하나 찾지 않는 치장 박물관, 임정 식솔 호구조사 도표만 덩그러니-매일경제
글쓴이 관리자
날 짜
19-04-14 23:00
조회(1047)
#1 https://www.mk.co.kr/news/society/view/2019/03/159836/ (373)

김구가 임정 식솔과 넘었던
쭌이 지역 누상관 고개엔
마오쩌둥 동상과 詩만


 


◆ 3·1운동, 임시정부 100주년 / 독립견문록, 임정을 순례하다 ⑧ 치장·쭌이◆


중국 치장현박물관 3층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항일투쟁을 진열한 전시관이 마련돼 있다.
사진설명중국 치장현박물관 3층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항일투쟁을 진열한 전시관이 마련돼 있다.

사진을 바라보는 사람이 발견하게 되는 하나의 사실은, 사진엔 언어가 없다는 점이다. 사진은 침묵한다.

그러나 사진은 언어 없이도 이야기를 품는 찰나의 집이다. 사진의 영원한 표정엔 무수한 이야기가 숨겨진다.


그래서일까. 족히 1m를 넘는 흑백사진, 아울러 그들의 거주지를 찍은 사진 여섯 장은 후손조차 찾지 않는 이국땅에서 이야기를 증거하며 걸려 있었다. 중국 치장현박물관에 지난달 14일 들러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옛 모습을 바라봤다. 박물관의 3층 한쪽은 우리나라 임정 요인을 기리는 한중 우호의 공간이다. 내부 리모델링을 이유로 3층 전체가 현재는 휴관 중이지만 공사를 개시하지 않은 덕분인지, 뭉텅이의 열쇠꾸러미를 달그락거리며 경비원이 다가왔다.

상승가, 판공루 용지, 지청천 장군 거주지, 이어 이동녕·조성환·백범의 집터 사진이 벽에 걸려 있었다. 내벽 우측 유리관엔 성명과 주소, 동그라미가 빼곡했는데 호구(戶口)조사에 사용됐던 도표 복제본이었다.

홍소연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건립추진위 자료실장은 "중국 국민당 지원을 받아 거처와 끼니를 의탁해야 하던 고난의 시절이었으므로, 당대 정확한 호구조사는 생존의 첫 단추였다"고 설명했다.

타만강을 복원한 전시 모형도 옛 시절 모습 그대로 방문객을 맞았다. 홍소연 실장을 비롯한 임시정부 유적지 답사단의 2011년 답사 사진이 이곳에 인화돼 있었다. 그러나 휴관 중이란 사실과 무관하게도 이곳을 찾는 한국인은 거의 없다. 학계나 연구자, 독립운동 관련 기관·단체가 아닌 순수 관광객은 찾아보기 어렵다. 치창현은 한중 우호의 일환으로 이곳에 전시관을 만들었다. 한국인 방문객이 없다면 영원히 기억에서 멀어질지도 모르는 장소였다.

앞서 치장에 도착하기 전, 실은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통과하지 않고 뺑 돌아가는 먼 길을 택한 터였다. 쭌이 지역의 거대한 산허리를 제발로 넘어보겠다는 욕심이었다. 산허리의 이름은 누상관(婁上關)으로, 첩첩산중의 허리를 갈라쳐 만들어진 고개다. 우천에 안개는 자욱했다.

기기묘묘한 분위기의 누상관은 백범 김구가 임정 식솔을 이끌고 지났던 길이다. 이곳 누상관엔 마오쩌둥이 허리춤에 양손을 얹고 어깨를 쭉 편 채 홍군을 이끄는 동상이 올려다보였고, 마오의 유명한 `장정시(長征詩)` 휘호가 5층 건물 높이로 산비탈에 새겨져 있었다.

피와 눈물이 서린 누상관의 역사는 초기 마오쩌둥의 역사로 거슬러 올라간다. 1935년 마오는 쭌이회의에서 공산당 실권을 거머쥔다. 쭌이를 지나 누상관을 넘은 마오는 길이 막히자 홍군(紅軍)을 이끌고 다시 누상관을 오른다. 피의 전투가 벌어졌다. 마오는 다시 승리한다. 누상관은 중국인에게 역대급 유적지다. 마오가 공산당을 장악한 쭌이회의장에는 연간 방문객 수가 500만명을 넘는다. 대관절, 누상관이 임정과 무슨 상관인가.

마오쩌둥이 누상관에서 승리하고 4년이 지난 1939년 봄, 나라 잃은 한 무리의 백성이 누상관 정상에 도착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라는 간판을 걸머진 이국땅의 한국인이었다. 백범 김구도 그들 가운데 하나였다. 중국 창사 난무팅에서 심장에 총을 맞은 뒤 한 해를 겨우 넘긴 시점이라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은 몸이었을 터. 오직 저 길뿐이었고, 현재도 이 길뿐이다.


마오의 또 다른 시 `누상관`의 한 구절의 풍경을 아마도 피난길의 임정 식솔도 분명히 쳐다봤을 것이었다. 마오는 이렇게 썼다. `…푸른산은 바다요(蒼山如海), 석양은 피빛이로다(殘陽如血)….`

피의 권력을 쥐고 넘은 고개, 한숨의 울분을 삼켜 건넌 고개였다. 내려가는 길, 안개는 도통 걷히지 않았다.

[치장·쭌이 = 김유태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게시물 1,030건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독립견문록 ⑩충칭 (上)] 강제 징집된 조… 관리자 2019-04-14 951
[독립견문록 ⑨시안] 혈전 맹세한 광복군…… 관리자 2019-04-14 872
[독립견문록 ⑨시안] "생 마감할 때까지 통… 관리자 2019-04-14 906
[독립견문록 ⑧치장 쭌이] 이동녕 거주지는… 관리자 2019-04-14 941
[독립견문록 ⑧치장 쭌이] 한국인 하나 찾… 관리자 2019-04-14 1048
[독립견문록 ⑦류저우] "염원하던 광복왔는… 관리자 2019-04-14 1023
[독립견문록 ⑦류저우] `나무배 임정`의 피… 관리자 2019-04-14 1020
[독립견문록 ⑥광저우] 2016년 발견한 광저… 관리자 2019-04-14 1039
[독립견문록 ⑥광저우] 독립 꿈꾼 20대 조… 관리자 2019-04-14 1044
“독립운동가 아버지 돌아가시자 내 호적엔… 관리자 2019-04-12 1100
‘재판 기록’으로 보는 항일투쟁역사 책으… 관리자 2019-04-10 1117
독립운동가 후손 등 초청…‘한민족의 뜨거… 관리자 2019-04-10 1170
임정 수립 100주년 기념식, 국민참여 축제… 관리자 2019-04-10 1144
“독립 향한 무한 도전… 임정, 계란으로 … 관리자 2019-03-21 1893
명문가 출신 김가진은 왜 상해 임정으로 갔… 관리자 2019-03-21 1898
'독립문' 글씨 주인공, 조선 운… 관리자 2019-03-21 1769
임시정부 살림꾼의 고민 "돈 필요할 때마다… 관리자 2019-03-21 1861
[원희복의 인물탐구]전 국사편찬위원장 이… 관리자 2019-03-21 1803
[왜냐면]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4월11일… 관리자 2019-03-07 1639
[1919 한겨레] 친일 첩자 오해로 총 맞은 … 관리자 2019-02-28 1853
[3·1절 100돌]독립유공자 후손 39명, 한국… 관리자 2019-02-28 1814
“삼월은 꺼질 줄 모르는 횃불” 3·1절 감… 관리자 2019-02-28 1902
1,030 [독립견문록 ⑩충칭 (上)] 강제 징집된 조… 관리자 2019-04-14 951
1,029 [독립견문록 ⑨시안] 혈전 맹세한 광복군…… 관리자 2019-04-14 872
1,028 [독립견문록 ⑨시안] "생 마감할 때까지 통… 관리자 2019-04-14 906
1,027 [독립견문록 ⑧치장 쭌이] 이동녕 거주지는… 관리자 2019-04-14 941
1,026 [독립견문록 ⑧치장 쭌이] 한국인 하나 찾… 관리자 2019-04-14 1048
1,025 [독립견문록 ⑦류저우] "염원하던 광복왔는… 관리자 2019-04-14 1023
1,024 [독립견문록 ⑦류저우] `나무배 임정`의 피… 관리자 2019-04-14 1020
1,023 [독립견문록 ⑥광저우] 2016년 발견한 광저… 관리자 2019-04-14 1039
1,022 [독립견문록 ⑥광저우] 독립 꿈꾼 20대 조… 관리자 2019-04-14 1044
1,021 “독립운동가 아버지 돌아가시자 내 호적엔… 관리자 2019-04-12 1100
1,020 ‘재판 기록’으로 보는 항일투쟁역사 책으… 관리자 2019-04-10 1117
1,019 독립운동가 후손 등 초청…‘한민족의 뜨거… 관리자 2019-04-10 1170
1,018 임정 수립 100주년 기념식, 국민참여 축제… 관리자 2019-04-10 1144
1,017 “독립 향한 무한 도전… 임정, 계란으로 … 관리자 2019-03-21 1893
1,016 명문가 출신 김가진은 왜 상해 임정으로 갔… 관리자 2019-03-21 1898
 1  2  3  4  5  6  7  8  9  10    


(우:03173) 서울특별시 종로구 새문안로 5길 19 로얄빌딩 602호 / TEL : (02)3210-0411,  732-2871~2 /   FAX : (02)732-2870  
E-MAIL : kpg19197837@daum.net
Copyright 2005 Korea Provisional Government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