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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독립견문록 ⑦류저우] `나무배 임정`의 피난처 류저우…사적지는 기약없는 수리중-매일경제
글쓴이 관리자
날 짜
19-04-14 22:57
조회(1019)
#1 https://www.mk.co.kr/news/society/view/2019/03/143343/ (359)

임정, 난징학살 핏빛광기 피해
40일 강물 떠돌다 류저우 도착
낙군사 인근 머물며 활동 지속

임정활동진열관 간판 선명한데
굳게닫힌 문…벽틈엔 잡초만이

항일투쟁 힘합쳤던 韓中청년들
공원 `이별의 나무`서 기념촬영
광복이후 넋이라도 재회했을까


 


◆ 3·1운동, 임시정부 100주년 / 독립견문록, 임정을 순례하다 ⑦류저우 ◆



`강물 위에 뜬 망명정부.`

여성 독립운동가 정정화 여사(1900~1991)의 회고록 `장강일기`에 등장하는 소제목이다. 중국 류저우(柳州)에 이르는 임시정부의 피난 동선을 정 여사는 이렇게 요약했다. 일제가 난징대학살을 자행한 전시에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하루에 고작해야 이삼십 리나, 운이 좋으면 오십 리"를 나아가며 목선(木船) 위에서 40일을 버텼고, 결국 사선을 넘어 류저우에 당도했다.

임정 요인들이 머물렀던 중국 류저우 건물을 지난달 13일 답사했다.


건물의 오랜 이름은 낙군사(樂群社)로 한눈에도 외관이 예사롭지 않았다. 러시아가 지은 프랑스식 건물은 지극히 고풍스러운데 노란 페인트칠과 뾰족하게 솟은 시계탑, 그 주위를 둘러싸는 아름드리 나무가 매력적이다. 멀리서 건물을 보니 원색 케이블카가 마안산(馬鞍山) 정상으로 느리게 움직여 볼수록 이국적이었다.


지난달 13일 답사한 류저우시의 임시정부 항일투쟁 활동 진열관. 번듯한 간판이 무색하게도 정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류저우 = 김유태 기자]
사진설명지난달 13일 답사한 류저우시의 임시정부 항일투쟁 활동 진열관. 번듯한 간판이 무색하게도 정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류저우 = 김유태 기자]

 


[류저우 = 김유태 기자]
사진설명[류저우 = 김유태 기자]

`류저우 대한민국 임시정부 항일투쟁 활동 진열관`이란 한국어 간판이 정문에 선명했다. 대문엔 `내부 수리 중이어서 진입을 금한다. 양해를 바란다`고 적혀 있었다. 1층 열린 창문으로 마침 경비원이 지나가기에 철장을 사이에 두고 물으니 "재개관 날짜는 모른다. 출입은 불가능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예상치 못한 난관에 류저우시 외사과에 연락을 취한 뒤 무작정 기다리며 건물 외부를 둘러봤다. 옆 건물 증축 공사 탓인지 건물 우측으로 벽 일부가 헐려 있었다. 그 옆엔 건설 폐기물도 일부 눈에 띄었는데 최근 몇 달간 관리가 안 된 까닭인지 건물 벽 틈에 이끼, 잡초가 자라났다.

"낙군사는 중국이 전국 단위 문물 보호단위로 지정한 건물이에요. 공식 청사로 쓰였을 가능성은 낮지만 임정 요인들이 머물렀을 가능성은 높습니다."

홍소연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건립추진위원회 자료실장이 설명을 이었다. 낙군사는 시(市)나 성(省)급보다 위인, 전국 단위로 지정된 중국 문화재다. 임정의 독립운동뿐 아니라 베트남민주공화국 초대 주석 호찌민이 독립운동하던 시기에 방문했을 만큼 역사가 깊은 건물이기 때문에 전국 단위로 지정됐다고 해석하는 편이 맞지 않을까. 그래서인지 `호찌민 기념관`이 낙군사 바로 맞은편에 있다.

외사과 직원의 답변을 기다리며 호찌민 기념관에 들렀다. 호찌민이 사용한 지팡이, 안경, 벼루와 붓이 제법 근사했다. 파리 정보경찰이 1919~1920년 작성한 `호찌민 감시보고서`가 최근 프랑스에서 발견됐다. 당시 프랑스 평화회의에 참가한 한국 독립운동가들과 호찌민이 교류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호찌민이 당시 한국인들이 하는 모든 일을 자신이 하고 있는 독립운동 활동의 근거로 삼았다는 대목도 보고서에 선명하다. 대한민국도 베트남도 역사의 한 부분을 공유한다. 호찌민이 초안을 쓴 `베트남 독립선언문`은 시대상을 떠올리며 읽어볼 만하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 인류는 창조주에 의해 빼앗을 수 없는 권리를 부여받았다. 그것은 생명, 자유, 그리고 행복의 추구이다….`

이념의 좌우(左右)를 넘어 제국주의에 짓밟힌 두 희생양의 독립 의지를 류저우는 품고 있었다. 류저우시 외사과의 불허로 아쉬움을 등진 채 떠나야 했지만 낙군사 내부엔 한국국민당 자료, 상하이에서 충칭에 이르는 임정 이동 시기 유적이 보관돼 있다 한다.

20분 거리에 위치한 류허우공원 정문에 들어섰다. 외관상으론 여느 공원처럼 아늑하나 광복을 꿈꾸며 총을 멨던 한국 청년들의 땀과 숨결이 스민 장소다.

류저우에 도착한 임정은 한국광복운동단체연합회인 `광복진선`과 함께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청년공작대)`를 편성하며 길을 모색한다. 청년공작대는 2년 뒤 편성되는 광복군 제5지대의 일원이 된다. 청년공작대는 중국의 선전공작대와 합작하며 항일의식을 고취시키는 대외 활동에 힘을 쏟았다. 중국인이 우리 측 청년공작대에 포함되기도 했다. 양국 젊은이들은 1939년 4월 임정이 이곳을 떠나기 직전, 이곳 류허우공원에 한데 모여 `이별의 나무` 아래 선다. 살아서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르는 작별의 공간이었을 나무를 찾기 시작했다. 무려 80년이 흘렀어도 정자와 고목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상상했다. 대한민국과 관련된 표식이 전혀 없다는 소문도 들은지라 내심 오기가 발동한 이유가 컸다. 이슬비를 두 시간쯤 맞았을까. 공원 내 `음악정`에 멈춰섰다. 나뭇가지가 휜 방향을 보니, 청년들이 섰던 `이별의 나무`가 분명했다.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가 치장으로 떠나기 전 류허우공원 음악정 중국인들과 찍은 사진. [사진 제공 =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사진설명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가 치장으로 떠나기 전 류허우공원 음악정 중국인들과 찍은 사진. [사진 제공 =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공원 출구로 향하는 길목에 청년공작대 사진과 문구가 걸려 있었다. `1939년 4월 4일, 대한민국의 청년공작대가 유후공원 음악정에서 사진을 찍었다.` 뒤늦은 확인이 야속했지만, 누군가 저들의 우정을 기억했다고 여기니 허탈할 이유는 없었다. 빗속에서 흑백사진을 한참 쳐다보노라니 문득, 저들 가운데 광복된 조국을 밟은 이는 몇이나 됐을까 하는 몽상에 빠졌다.

[류저우 =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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